[윤성민 칼럼] 敵은 밤에 도둑같이 오리라

입력 2023-10-18 17:37   수정 2023-10-19 00:31

이번에도 명절이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친 지난 7일은 유대력상 7대 절기 중 하나인 수코트(초막절)가 끝나는 안식일인 심하트 토라, 곧 ‘토라(구약성서 모세 5경)의 기쁨’ 축제일이었다.

베트남전 구정 대공세나 일요일 새벽에 터진 6·25전쟁처럼 모두가 쉬는 때를 골라 오전 6시30분부터 5000여 발의 로켓포 공격과 함께 1500여 명의 하마스 대원이 육해공으로 밀고 들어가 이스라엘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유대교 축일에 당한 이스라엘엔 종교적 조롱이라는 치욕이 더해졌다. 이번 하마스 기습이 소환하는 4차 중동전쟁도 그랬다. 50년 전인 1973년 10월 6일, 유대력에서 가장 경건한 날로 운전조차 금지된 욤 키푸르(대속죄일)에 이집트·시리아군의 기습으로 이스라엘은 개전 초 17개 여단이 궤멸하며 망국의 위기로까지 몰렸다.

아랍엔 10월 전쟁, 이스라엘엔 욤 키푸르 전쟁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세계 전쟁사에 남는 정보 실패 사례다. 당시 이집트군은 시나이반도에, 시리아군은 골란고원에 병력을 집결시켜 놓는 등 전쟁이 임박했다는 무수한 ‘신호’가 있었음에도 이스라엘군 정보국 책임자 엘리 제이라에 의해 철저히 차단되거나 ‘소음’으로 치부됐다. 제이라는 요르단 국왕이 전쟁 열흘 전 이스라엘을 비밀 방문해 총리에게 전쟁 발발을 귀띔해 준 것도 믿지 않았고, 적군의 병력 집결은 군사 훈련으로 해석했다.

그는 이집트가 소련으로부터 전폭기와 스커드 미사일을 제공받지 못하는 한 전쟁을 수행할 수 없으며, 시리아는 이집트 없이는 결코 독자 행동하지 못할 것이란 이른바 ‘개념’의 맹신자였다. 제이라의 오판이 먹힐 수 있었던 궁극적 이유는 이스라엘 지도부와 국민의 의식 상태였다. 1967년 단 6일 만에 아랍 13개 연합군에 압승을 거둔 3차 중동전 이후 이스라엘 사회엔 “아랍은 전쟁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란 군사적 우월감이 만연했다.

그 자만과 방심은 50년 뒤에 되풀이됐다. 가자지구의 경계병은 첨단 감시 장비와 센서, 원격 작동 기관총만 믿은 채 잠을 자다가 사살됐다. 제이라처럼 확증편향과 인지적 종결 욕구에 사로잡힌 정보당국은 숱한 전쟁 시그널에도 불구하고 하마스의 성동격서 기만술에 눈 뜨고 코 베임을 당했다.

북한은 하마스와 차원을 달리하는 군사력을 갖고 있다. 정규군은 128만 명으로, 우리(50만 명)의 두 배를 넘는다. 6·25 이후 대남 침투 및 국지도발 횟수가 3121회(2022 국방백서)에 달할 정도로 호전적이다. 무엇보다 핵을 감안하면 단순 군사력 비교는 무의미해진다. “세계 6위의 군사력인데 왜 일본과의 군사훈련이 필요하냐”는 야당 대표의 말은 진정 대단한 ‘근자감’이다.

이런 적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는 어떤가. 세계 최고 수준의 안보관과 정보력을 보유한 이스라엘도 뚫리는데 우리는 얼마나 자신할 수 있나. 번영의 결과물에 취해 평화도 늘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 힘의 균형은 곧 공포의 균형인데, 우리는 전쟁의 공포에만 함몰돼 있는 건 아닌가.

북핵 위력은 실제 사용에만 있지 않다. 핵 사용의 정치 심리적 공포를 활용해 상대를 겁박하는 인지전이 더 실질적 위협이다. 그 공포의 싹은 이미 우리 안에서 자라나고 있다. 얼마 전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신원식 국방부 장관의 인사청문회에서 대북 심리전 재개를 놓고 설전을 벌이다가 이런 말을 했다. “(북한이) 미사일 쏘면 우린 당해요. 심리전이라고 그러지만 싸우는 거예요. 평화를 유지하면서 말 그대로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을 택해야 할 거 아니에요.”

정치인은 유권자의 약점을 먹고 산다. “제발 전쟁만은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는 애원이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는 법’과 같은 그럴싸한 ‘평화 쇼’의 자양분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의 극성 엄마들은 군대 간 아들에 대해서도 ‘헬리콥터 맘’이다. 그들이 카톡방에서 부대장에게 하는 민원을 보면 유치원 군대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전쟁 나면 엄마 아빠가 대신 나가서 싸워야 할 판이다.

“주님의 날은 밤에 도둑같이 오리라”는 성경 구절이 있다. 심판의 날에 대비해 항상 깨어 있으라는 주문이다. 하마스 기습에서 보듯 적도 밤에 도둑같이 온다. 곤한 일이더라도 애써 깨어 있어야 한다. 하마스 사태가 주는 단순하지만 시비 걸 수 없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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